인간의 언어 이해와 AI 언어 처리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거의 동시에 의미를 알아차린다. 말이 조금 어눌해도, 문장이 중간에 끊겨도, 심지어 문법이 틀려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그 말을 했는지까지도 자연스럽게 느낀다.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할 뿐, 이 과정은 사실 놀라울 만큼 복잡한 두뇌 활동이다.
반면 AI에게 언어를 이해시키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요즘 AI는 사람처럼 말하고,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AI가 이미 인간의 언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AI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이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리언어학은 바로 이 지점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인지되고, 처리되고, 의미로 완성되는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을 알고 나면, AI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훨씬 분명해진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과 AI가 언어를 처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AI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예측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려 한다.

인간은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이미 의미를 향해 간다
사람의 언어 이해는 단어를 읽거나 듣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 미묘한 음질 차이를 동시에 감지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의 흐름 속에서 어디까지가 하나의 단어인지, 어디서 의미가 나뉘는지를 자연스럽게 구분한다. 이후 우리는 그 소리를 머릿속에 저장된 어휘와 연결한다. 이 과정을 심리언어학에서는 어휘 접근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단순히 단어 하나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어의 소리, 의미, 문맥, 과거 경험까지 함께 활성화되면서 가장 적절한 해석이 선택된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문장의 구조를 분석하고, 앞뒤 맥락을 고려하며,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추론한다. 이 모든 과정이 거의 동시에, 그것도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언어 이해는 단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층위가 얽혀 있는 유기적인 과정이다.
AI는 이해하지 않는다, 계산한다
AI의 언어 처리는 겉보기에는 인간과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AI는 소리를 듣고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입력된 언어를 숫자와 벡터로 변환하고, 그 사이의 관계를 계산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수많은 문장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어떤 단어 뒤에 어떤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지, 어떤 문맥에서 어떤 표현이 자연스러운지를 익힌다. 그리고 질문을 받으면 의미를 해석하는 대신, 다음에 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어를 선택한다. 다시 말해 AI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간호사’라는 단어는 단순한 직업명이 아니다. 병원, 환자, 돌봄, 책임감 같은 개념이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AI에게 ‘간호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 개념이 아니라, 다른 단어들과 얼마나 자주 함께 등장했는지를 나타내는 데이터다.
그래서 AI는 매우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면서도, 가끔은 말이 안 되는 답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다. 그 문장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까지는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설이고, AI는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 처리에는 항상 약간의 불완전함이 존재한다.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한다. 혀끝에서 맴도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지는 순간, 바로 혀끝 현상이다.
또 어떤 문장을 들을 때는 처음엔 이해한 것 같다가,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듣고 다시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길 혼돈 문장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문장을 처리하면서 끊임없이 추측하고 수정한다.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혼란도 발생한다.
AI는 다르다. AI는 단어를 잊어버리지도 않고, 해석을 망설이지도 않는다. 이는 AI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한된 인지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빠른 추정을 선택하지만, AI는 방대한 계산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바로 도출한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 이해는 심리적 과정이고, AI의 언어 처리는 수학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 말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를 아는 것일까. 인간은 언어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감정을 전하고, 관계를 만들고, 상황을 공유한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맥락에서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런 해석은 사전에 정의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심리에서 나온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문장을 살아본 적은 없다. 슬퍼본 적도, 긴장된 침묵을 경험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문장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 문장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으로 닿는지까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AI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어의 패턴을 예측한다. 반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며, 감정을 주고받는다. 이 차이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심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
심리언어학이 밝혀낸 언어 이해의 구조를 보면, 왜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지도 분명해진다. AI는 뛰어난 계산자이지만, 인간은 해석자다. 그리고 언어는 계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에도 인간의 언어 능력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가진 의미와 맥락을 함께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