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시스템이 우리의 사고를 설계하는 방식, 선택은 많아졌는데, 왜 망설임은 줄어들었을까
요즘 우리는 선택을 참 쉽게 한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들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추천 목록은 이미 정리되어 있고, 당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이상한 점은 분명 선택지가 넘쳐나는데도, 우리는 예전보다 덜 고민하고 덜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마치 이미 누군가가 대신 골라 둔 길 위에서 확인 버튼만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혹시 우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선택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에서는 AI가 결정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어떻게 제한하는지,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는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고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려 한다.

AI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선택지를 설계할 뿐이다
AI는 “이걸 선택해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훨씬 정교한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보게 될 선택지 자체를 미리 정해 놓는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의 과거 행동을 바탕으로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추론한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접하는 세계의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는 데 있다. 보지 못한 것은 선택할 수 없다.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AI는 우리의 결정을 대신하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지의 범위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불편함도 없고, 강요도 없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추천은 중립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추천 시스템을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추천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무엇을 우선 노출할 것인지,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는 모두 설계자의 선택이다. AI는 인간이 설정한 목적에 맞게 작동한다.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구매 전환을 높이기 위해, 클릭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선택지는 정렬된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익숙한 취향, 예측 가능한 판단, 안전하고 무난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선택은 여전히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고의 폭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판단을 위임할수록 사고는 짧아진다
선택이 쉬워질수록 생각은 줄어든다. 왜 이것을 골랐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어난다. 추천에 떠서, 다들 그렇게 하길래 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다. 이는 개인의 나태함 때문이 아니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미 정리된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는 훈련을 점점 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선택은 남아 있지만, 선택에 이르는 사고 과정은 점점 사라진다. 결국 우리는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정에 동의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자유는 선택지가 많다고 생기지 않는다. 자유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AI 추천 시스템은 우리에게 최적의 답을 빠르게 제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질문 자체를 줄여 버린다. 이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이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는 왜 이 방향을 선호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점점 덜 필요해진다. 우리는 편리해졌지만, 동시에 사고의 여지를 잃고 있다. AI는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너무 잘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다.
선택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의심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에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추천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선택지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추천되었는지,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내 판단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지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택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사고하지 않는 선택은 자유라고 부르기 어렵다. AI가 점점 더 많은 선택지를 정리해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빠른 결정이 아니라 천천히 의심할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